당연함이라는 건 시대 앞에 무력하다. 부모세대엔 돈모아 일가를 꾸리고 살아가는게 당연함이었다. 근데 그건 지금 시대엔 당연하지 않음 투성이다.
'돈모아'부터 보자. 주변을 잘 살펴보자. 돈을 모으고 있는건가, 갚고있는건가. 가장 좋은 표현을 골라봐야 '돈굴려'밖에 안나온다. 사실 '돈 굴려'도 아니다. '돈 메꾸며'가 정확하다. 쓸 돈은 대부분 금융업체에서 빌려 메꾼다. 기본적으로 먹고 입는 것도 카드로 계산하는데 이것도 돈을 빌린 뒤 다음달에 메꾸는 것이다. 게다가 집이나 차, 결혼자금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일가를 꾸리고' 역시 이 시대에선 점점 당연하지 않게 되어가고 있다. 종족번식행위인 섹스는 이젠 유흥거리나 생활이 되었고 자신의 삶을 위해 결혼이 걸림돌이 된다면 결혼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시대.
결국 돈모아 일가를 꾸리고 살아가는 건 이젠 돈 메꾸며 살아가다 필요하면 결혼을 하는 걸로 바뀌었다.
우린 이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2012년 6월 11일 월요일
2012년 6월 9일 토요일
아름다운 위화감
오우삼 감독의 페이스오프에는 총격전 중에 아기에게 씌워준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오버더레인보우가 총격전의 소음을 지우고 전투장면을 아름답게 해준다. 아름다운 위화감을 처음 느꼈다.
그 아름다운 위화감을 주말마다 느낀다. 아버지께서 전쟁영화를 즐겨보시는데 올드팝을 함께 틀어놓으신다. 일요일만 쉬시다보니 좋아하는 두가지를 최대한 즐기고싶으신 모양이다.
좀 전의 조합은 밴드오브브라더스와 엘비스의 러브미텐더. 얼마전엔 라이언일병 장갑차와의 전투장면과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 특히나 격한 음악보다는 감미로롭거나 차분하며 아련한 음악과 묘하게 잘 어울린다.
묘하다.
그 아름다운 위화감을 주말마다 느낀다. 아버지께서 전쟁영화를 즐겨보시는데 올드팝을 함께 틀어놓으신다. 일요일만 쉬시다보니 좋아하는 두가지를 최대한 즐기고싶으신 모양이다.
좀 전의 조합은 밴드오브브라더스와 엘비스의 러브미텐더. 얼마전엔 라이언일병 장갑차와의 전투장면과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 특히나 격한 음악보다는 감미로롭거나 차분하며 아련한 음악과 묘하게 잘 어울린다.
묘하다.
2012년 6월 7일 목요일
똑!
똑! 하고 걸린 담이 풀릴때도 똑! 하고 풀렸으면 좋겠다. 담의 시작처럼. 하지만 늘 천천히, 그러다 어느날 문득 풀린 걸 알아챌 뿐이다. 이쪽으로 움직이다 똑! 하고 걸렸으면 반대편으로 움직였을 때 딱! 하고 풀리면 얼마나 좋을까?
사는 것도 그렇다. 늘 사고는 땅! 하고 시작한다. 달리기 시작처럼 "요이-"하는 예고도 없다. 하지만 담과 마찬가지로 시작과 다르게 우여곡절을 겪다가 어느 순간, "지나갔구나." 하고 알아챌 뿐이다. 지랄맞다.
오직 잠만 반대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언제인지 모르게 잠들고는 알람소리에 깬다. 예고없이.
또, 오직 사랑만이 양쪽의 구조를 다 가지고 있다. 어느 순간 한눈에 반해 시작되거나 서서히 빠져들고, 서서히 질리거나 어떤 사건을 계기로 한 순간에 마음이 깨진다.
동이 트고 있다. 언제 빠져들지 모를 잠을 기약없이 기다려야겠다.
사는 것도 그렇다. 늘 사고는 땅! 하고 시작한다. 달리기 시작처럼 "요이-"하는 예고도 없다. 하지만 담과 마찬가지로 시작과 다르게 우여곡절을 겪다가 어느 순간, "지나갔구나." 하고 알아챌 뿐이다. 지랄맞다.
오직 잠만 반대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언제인지 모르게 잠들고는 알람소리에 깬다. 예고없이.
또, 오직 사랑만이 양쪽의 구조를 다 가지고 있다. 어느 순간 한눈에 반해 시작되거나 서서히 빠져들고, 서서히 질리거나 어떤 사건을 계기로 한 순간에 마음이 깨진다.
동이 트고 있다. 언제 빠져들지 모를 잠을 기약없이 기다려야겠다.
2012년 6월 3일 일요일
객관은 밥맛
사람들은 객관적 의견이나 평가를 신뢰한다. 주관이 근시안적 사고를 하고 개인의 입장일 뿐이라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난 반대다.
객관이 뭔가. 감정을 배제하고 상황의 흐름만 지켜보고 인지한 제 3자의 주관 아닌가? 그게 어떻게 신뢰가 가는가. 당사자들 전부의 인생을 꿰뚫어보고 있다 해도 결국 제 3자라는 개인의 주관과 성향과 판단기준이 개입되고 심지어 당사자들의 감정을 문자로만 접할 뿐인데.
감정을 문자로 표현해보라. 있는 그대로 서술해보라. 단 하나의 작은 감정도 간과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가? 과거의 해묵은 감정이 개입 되어 어떻게 작용했는지도 설명할 수 있는가? 바람과 장소, 온도, 당시의 그 모든 것이 감정에 어떠한 작용을 하진 않았는가? 이 모든 걸 상대방이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겠는가
모든 일의 가장 정확한 감정은 본인밖에 모른다. 본인마저도 모를 수 있다. 단지 피력할 때 본인도 모르는 것들이 작용하여 표현될 뿐. 주관의 말은 설득력이 없을 지 몰라도 모든 걸 느끼고 알고있으니 가장 적절한 판단은 주관만이 할 수 있다. 그런데 제3자에게 판단을 맡겨?
객관을 어떻게 신뢰해. 난 못해. 단지 제 3자의 시야를 더 가지고 있을 뿐이지. 그 제 3자도 그날의 감정이나 당일의 일과에 의해 의견이 결정되는데.
객관 조까.
객관이 뭔가. 감정을 배제하고 상황의 흐름만 지켜보고 인지한 제 3자의 주관 아닌가? 그게 어떻게 신뢰가 가는가. 당사자들 전부의 인생을 꿰뚫어보고 있다 해도 결국 제 3자라는 개인의 주관과 성향과 판단기준이 개입되고 심지어 당사자들의 감정을 문자로만 접할 뿐인데.
감정을 문자로 표현해보라. 있는 그대로 서술해보라. 단 하나의 작은 감정도 간과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가? 과거의 해묵은 감정이 개입 되어 어떻게 작용했는지도 설명할 수 있는가? 바람과 장소, 온도, 당시의 그 모든 것이 감정에 어떠한 작용을 하진 않았는가? 이 모든 걸 상대방이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겠는가
모든 일의 가장 정확한 감정은 본인밖에 모른다. 본인마저도 모를 수 있다. 단지 피력할 때 본인도 모르는 것들이 작용하여 표현될 뿐. 주관의 말은 설득력이 없을 지 몰라도 모든 걸 느끼고 알고있으니 가장 적절한 판단은 주관만이 할 수 있다. 그런데 제3자에게 판단을 맡겨?
객관을 어떻게 신뢰해. 난 못해. 단지 제 3자의 시야를 더 가지고 있을 뿐이지. 그 제 3자도 그날의 감정이나 당일의 일과에 의해 의견이 결정되는데.
객관 조까.
자유롭고 싶은거 맞냐?
자유란 거, 자유롭지 못한 이의 상상 속에서 가장 찬란하지. 주어지면 또 다른 걸 바라보잖아. 마치 천사거나 여신이 분명하다 생각되는 여자를 천신만고 끝에 꼬셔내어 하룻밤을 보내고 난 아침, 옆에 누워 있는 건 결국 한명의 여자일 뿐이란 걸 알아버리고 TV채널을 돌리고 있듯.
자유가 너를 상대로 밀당해주지 않으면 넌 절대 능동적으로 자유를 온전히 느끼지 못하지. 안그렇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냐? 자유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자유 몰래 지나가는 딴 욕망 훔쳐보는 짓 하고싶은 건 아니고?
자유가 너를 상대로 밀당해주지 않으면 넌 절대 능동적으로 자유를 온전히 느끼지 못하지. 안그렇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냐? 자유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자유 몰래 지나가는 딴 욕망 훔쳐보는 짓 하고싶은 건 아니고?
2012년 5월 31일 목요일
선구자
장동건 이병헌 차승원 정우성 김하늘 최지우 김혜수 오연수 김선아 손예진 등등. 기타 30대 및 40초반의 연예인들.
우리, 정확히는 30대는 이들에게 고마워해야한다. 10년전엔 30대는 20대에게 노땅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남자이고 여자인데 30대를 살아갈 뿐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들이 우리를 노땅이라는 소리 대신 아직 연애세포 살아있는 나이로 자리매김하게 해주었다.
우리가 40대를 향해 달려가는 지금, 그들은 우리의 40대도 미리 꾸며주고 있다. 과장 부장 엄마 아빠 노처녀 노총각이 아닌 남자와 여자로 살아갈 수 있게.
결혼이란 거, 어차피 요즘은 한사람과 장기간 살아가기 위한 법적 사회적 절차에 불과하지 않은가. 60대에 이혼하고 다른 사람을 찾아나서는 어르신도 있다는 건 영원한 짝이란 판타지, 혹은 타인의 시선이나 아이나 상황에 묶여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라는 것 아닌가?
한 사람과 죽을때까지 사는 것은 여전히 아름다운 일임에는 틀림 없지만 그것이 의무나 책임이 아닌 선택사항임을 알려주는 게 아닐까?
우리, 정확히는 30대는 이들에게 고마워해야한다. 10년전엔 30대는 20대에게 노땅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남자이고 여자인데 30대를 살아갈 뿐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들이 우리를 노땅이라는 소리 대신 아직 연애세포 살아있는 나이로 자리매김하게 해주었다.
우리가 40대를 향해 달려가는 지금, 그들은 우리의 40대도 미리 꾸며주고 있다. 과장 부장 엄마 아빠 노처녀 노총각이 아닌 남자와 여자로 살아갈 수 있게.
결혼이란 거, 어차피 요즘은 한사람과 장기간 살아가기 위한 법적 사회적 절차에 불과하지 않은가. 60대에 이혼하고 다른 사람을 찾아나서는 어르신도 있다는 건 영원한 짝이란 판타지, 혹은 타인의 시선이나 아이나 상황에 묶여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라는 것 아닌가?
한 사람과 죽을때까지 사는 것은 여전히 아름다운 일임에는 틀림 없지만 그것이 의무나 책임이 아닌 선택사항임을 알려주는 게 아닐까?
2012년 5월 29일 화요일
1:1과 삼각, 그 이상의 관계
이차원적 관계, 그러니까 1:1을 선호한다. 이건 남녀관계를 떠나 동성친구에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점이 무수히 많아도 상관없다. 나라는 기준점과의 연결선만이 존재하고 다른 점끼리의 연결선이 없다면 복잡할 것이 없다.
문제는 삼각부터 생긴다. 아니, 삼각도 사실 문제는 없다. 다른 두 점이 각각의 위치에서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허나 사람이기에, 나와 연결된 선들에 '이등변'이라는 요구사항이 생기면 그때부터 문제는 시작된다.
나머지 두 점끼리 지나치게 가까워지거나 하나가 되면 다른 점은 거리를 유지해야한다. 양쪽 모두 평행하게. 설사 두 점 중 하나가 다른 한 점보다 나와 더 가까워지려하면 삼각에 파장이 생겨버린다. 그 다른 한점이 힘을 주기 때문에. 성가시다.
뭐 취향의 차이일 수도 있다. 균형놀이가 좋으면 삼각, 줄다리기가 좋으면 1:1이겠지. 허나 내가 1:1을 선호하는 이유는 1:1에도 무게라는 개념 덕분에 균형이란 요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1:1과 삼각만으로도 이렇게 복잡한데 안타깝게도 우린 삼각 사각은 물론이요, 오각 육각 십각 이십각을 넘어 60억각 이상이라는 보이지 않는 잠재적 관계마저도 지닌채 살아간다. 그래서 부대껴가며 사는게 이리도 힘든거구나 싶다.
문제는 삼각부터 생긴다. 아니, 삼각도 사실 문제는 없다. 다른 두 점이 각각의 위치에서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허나 사람이기에, 나와 연결된 선들에 '이등변'이라는 요구사항이 생기면 그때부터 문제는 시작된다.
나머지 두 점끼리 지나치게 가까워지거나 하나가 되면 다른 점은 거리를 유지해야한다. 양쪽 모두 평행하게. 설사 두 점 중 하나가 다른 한 점보다 나와 더 가까워지려하면 삼각에 파장이 생겨버린다. 그 다른 한점이 힘을 주기 때문에. 성가시다.
뭐 취향의 차이일 수도 있다. 균형놀이가 좋으면 삼각, 줄다리기가 좋으면 1:1이겠지. 허나 내가 1:1을 선호하는 이유는 1:1에도 무게라는 개념 덕분에 균형이란 요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1:1과 삼각만으로도 이렇게 복잡한데 안타깝게도 우린 삼각 사각은 물론이요, 오각 육각 십각 이십각을 넘어 60억각 이상이라는 보이지 않는 잠재적 관계마저도 지닌채 살아간다. 그래서 부대껴가며 사는게 이리도 힘든거구나 싶다.
동네친구
동네 친구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둘도 싫다. 삼각은 복잡하니까 딱 하나.
퇴근 후 근처 편의점으로 불러내 같이 앉아 병맥주 한모금 같이 할 수 있는. 대화도 잘 통하고 제법 쿨한 녀석으로. 적당히 위트도 있으면 좋겠고. 각자의 연애상담도 해줄 수 있는 만큼은 깊은 속내를 나눌 수 있는.
여자면 뭐 더 좋다.
이성적 감정이 없을 순 없겠지만 그 감정은 마치 수개월 고인 빗물 바닥의 먼지진흙처럼 바닥에 가라앉아 올라오지 않는 형태로 자리하면 되겠지.
같이 있거나 같이 다닐 때 기분좋고 즐거울만큼 외모도 적당히만 괜찮으면 더 좋고.
나중에 마흔이 되어도 서로 싱글이면 가라앉은 그 먼지진흙같은 감정에 손 한번 휘저으면 뭉게뭉게 수년간의 감정이 올라올 수도 있을.
비겁하고 치사한 바람이지만 다들 원하고 있지 않을까? 어쩌면 모두가 바라는 이상적인 결혼상대 아닐까?
커피프린스 2화에서 한성과 은찬이 벤치에서 캔맥주에 아이스크림 먹는 모습을 보다 문득.
둘도 싫다. 삼각은 복잡하니까 딱 하나.
퇴근 후 근처 편의점으로 불러내 같이 앉아 병맥주 한모금 같이 할 수 있는. 대화도 잘 통하고 제법 쿨한 녀석으로. 적당히 위트도 있으면 좋겠고. 각자의 연애상담도 해줄 수 있는 만큼은 깊은 속내를 나눌 수 있는.
여자면 뭐 더 좋다.
이성적 감정이 없을 순 없겠지만 그 감정은 마치 수개월 고인 빗물 바닥의 먼지진흙처럼 바닥에 가라앉아 올라오지 않는 형태로 자리하면 되겠지.
같이 있거나 같이 다닐 때 기분좋고 즐거울만큼 외모도 적당히만 괜찮으면 더 좋고.
나중에 마흔이 되어도 서로 싱글이면 가라앉은 그 먼지진흙같은 감정에 손 한번 휘저으면 뭉게뭉게 수년간의 감정이 올라올 수도 있을.
비겁하고 치사한 바람이지만 다들 원하고 있지 않을까? 어쩌면 모두가 바라는 이상적인 결혼상대 아닐까?
커피프린스 2화에서 한성과 은찬이 벤치에서 캔맥주에 아이스크림 먹는 모습을 보다 문득.
시간은 둥글다
시간은 둥글다. 지구가 둥글어 지평선 너머 저 먼 앞길과 지나온 길이 보이지 않듯이 저 먼 미래와 지나온 시간들이 보이지 않는다. 고로, 시간은 둥글다.
다만, 지구는 이미 여러번 돌았고 저 멀리 반대편에도 누군가 살고 있기에 누군가에게 길을 물을 수 있지만 시간은 어찌나 큰지 아직 한바퀴조차도 돌지 않아 그 누구도 저 반대편에 살기는 커녕 가본 이도 없다는 것이 다를 뿐.
그리고 다 돌기도 전에 모두 생을 마감하기에 그 누구도 처음 걸음을 뗀 그 곳에 다시 가보질 못했다. 심지어 거꾸로 갈 수도 없는 잔인함마저.
저 멀리 시평선 너머로 사라져가는 지난 날들은 그래서 더 슬프다.
다행인 건, 시간위의 우리는 좀 더 먼 과거가 보이는 추억이란 이름의, 시평선 너머의 앞날을 볼 수 있는 지혜라는 이름의 눈을 가지고 있다는 것.
문득, 시간 위에서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앉아 바라본다. 내 과거가, 내 지난 생이 땅거미지는 풍경. 천천히 추억을 꿈뻑거리며.
다만, 지구는 이미 여러번 돌았고 저 멀리 반대편에도 누군가 살고 있기에 누군가에게 길을 물을 수 있지만 시간은 어찌나 큰지 아직 한바퀴조차도 돌지 않아 그 누구도 저 반대편에 살기는 커녕 가본 이도 없다는 것이 다를 뿐.
그리고 다 돌기도 전에 모두 생을 마감하기에 그 누구도 처음 걸음을 뗀 그 곳에 다시 가보질 못했다. 심지어 거꾸로 갈 수도 없는 잔인함마저.
저 멀리 시평선 너머로 사라져가는 지난 날들은 그래서 더 슬프다.
다행인 건, 시간위의 우리는 좀 더 먼 과거가 보이는 추억이란 이름의, 시평선 너머의 앞날을 볼 수 있는 지혜라는 이름의 눈을 가지고 있다는 것.
문득, 시간 위에서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앉아 바라본다. 내 과거가, 내 지난 생이 땅거미지는 풍경. 천천히 추억을 꿈뻑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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